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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인공와우이식 후 어떤점이 달라졌는지 체험담을 들어봅시다.

내 삶을 바꾼 인공와우

2017.02.12 20:57

soriclinic

조회 수813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2008 1월 8일 김리석 교수님께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정명은이라고 합니다.

와우 수술을 받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와우수술을 받은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중의 하나가 아닐까합니다. 성인 청각인들은 절실히 느끼겠지만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으려고 해도 가장 걸림돌이 되는 건 청력입니다. 그 아무리 날고 기는 실력을 가졌다해도 가장 기본이 되는 통화를 못하는 이상은 50점은 까먹고 들어가더군요. 저 역시 번번히 취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기본인 전화받기가 불가능한테 어떻게 직장생활을 하겠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냉철한 사회에서 배려를 기대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였습니다. 결국 적성과 동떨어진 직업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했는데 근무할 때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어서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2006년의 어느 날 취업박람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연차를 내고 회사 몰래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서울이비인후과 원장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명은씨의 경우에는 인공와우 수술을 하면 예후가 굉장히 좋을 것입니다 전화도 하고 라디오도 듣고 6개월이면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것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보청기를 해도 입모양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데 어찌 인공와우를 한다고 좋아질까 내가 전화를 받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하는 마음뿐. 결국 충고를 흘려듣고 1년 반이 넘는 세월을 허송세월하며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활동하는 청각장애인 모임이 있었는데 그곳의 친구들이 하나 둘 인공와우 수술을 하고 놀랄만한 성과를 보이는걸 보면서 제 마음도 흔들렸습니다. 거기다 외근 갔다 만났던 남자친구의 적극적인 성원으로 수술하자고 마음을 먹고 병원 물색차에 대한청각협회 회장이신 김리석 교수님의 기사를 읽고 동아대병원으로 왔습니다.

수술을 하고서도 설마하던 마음이 매핑을 거듭함에 따라 그저 소음이었던 소리들이 어느새 일상음으로 바뀌기 시작하였고 정말 기적과도 같은 효과가 잇따르면서 와우 착용 7개월만에 면접을 보고 제가 원하는 일을 하는 직장에 입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입사할 때 여전히 전화 공포증은 있었지만 나는 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을 갖고 벨이 울리면 무작정 전화를 받았는데 자신감을 가지면서 받는 전화와 그냥 받는 전화의 차이는 엄청나더군요. 그렇게 와우의 힘을 빌어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회사로 이직한지 어느새 2년이네요. 예전에 와우를 하기전의 직장 상황를 떠올려본다면 우선 회식이라는건 그저 먹는 기억뿐 남들 다 웃을 때 혼자서만 침묵해야하고, 야유회날 관광버스안에서 불을 끄고 다들 광란의 밤을 보낼 때 어둠속에서는 입모양이 보이지 않아 그마나 나눴던 대화를 나누지도 못하고 누군가 어둠속에서 제가 입모양을 보고 말하라고 휴대폰 조명을 자신의 입에 대면서 제게 말을 걸때 느끼던 민망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네요.

시각장애는 사물과의 단절을 의미하지만 청각장애는 사람과의 단절을 의미한다는 말처럼 기본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동료들과 있었던 사소한 오해로 빚어진 다툼도 좀 있었고 다들 수다 나두던 점심시간엔 홀로 묵묵히 컴퓨터를 하던 기억도 있네요. 하지만 와우수술을 하고 저의 직장생활은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말수적던 제가 놀랄만한 수다내공이 생기게 되었고 퇴근 후 걸려오는 회사업무 전화도 척척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회식을 한다고 하면 예전처럼 혼자 침묵하는게 싫어 기피했는데 이제는 회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죠. 예전처럼 침묵하지 않고 같이 웃으면서 말이죠. 또한 회의나 교육때도 적극적으로 경청하면서 요점 정리도 하고 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입사한지 두 달만에 모범상도 받고 3개월뒤에는 직장동료들이 뽑는 친화력이 강한 직원에게 주는 친절상도 받았습니다. 지금은 와우덕분에 마치 내 집과도 같은 직장생활을 하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100%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와우 수술을 하고나서는 모두들 불가능하게 여겼던 사무실에 홀로 앉아 팩스도 보내고 전화도 받고 실수 없이 일을 처리하는걸 보면 와우 없는 직장 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빠른 눈치와 제 본연의 성격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제 2의 인생을 열어준 와우, 그리고 여기 동아와우회 회원들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인연들입니다. 축복받은 와우세대로 태어나서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요. 문득 삶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일곱살무렵 의사로부터 평생 걸을수 없을 거라는 선고를 받았지만 자신의 굳건한 의지와 정신력으로 기적을 부른 올림픽 육상부분 은메달리스트 글렌커닝엄의 실화처럼 정말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를 감동시켜서 원하는게 이루어진다는 말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걸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어둠속에서 불빛으로 상대방의 입모양을 비추던 제가 이제는 깜깜한 밤에도 웃으면서 대화를 즐길수 있게 되었고 컴퓨터며 텔레비전이며 소리를 0으로 해서 듣던 제가 이젠 자막을 보지 않아도 누구 누구 목소리구나 하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와 통화하는 고객들은 청각장애인이 직접 전화하여 고객클레임까지 처리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반전일 것입니다. 또한 와우 수술전에는 “뒤에서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며느리는 집안망신이라 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시던 예비 시어머니의 반대도 와우 수술을 함으로써 이젠 일주일에 한번은 서로 전화로 안부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명절이나 휴일에도 보면 볼수록 매력이라는 말을 듣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물론 와우를 하면서 무조건 다 좋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기 박스형을 하고 다니던 시절에는 사상터미널에서 정신이상자에게 와우가 길바닥에 내팽겨지는 수모를 당했고 피곤해서 습관적으로 버스 뒷자석에 머리를 기댔는데 순간적으로 와우가 버스 쇠부분에 붙었던 일, 사촌동생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자석이 머리에 붙어서 모두다 놀랐던 에피소드 등 웃지 못할 일화들도 많아요. 하지만 현재로선 와우가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이제 와우없는 삶은 생각조차 못하겠네요. 원하는 직장과 원만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제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 인공와우의 존재에 무한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 여기 모인 회원님들도 시작점은 서로 다르지만 도착점은 서로 같다는 전제하에 열심히 재활하시고 와우 관리 잘하셔서 서로가 간절히 바라는 모든 꿈을 이루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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