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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인공와우이식 후 어떤점이 달라졌는지 체험담을 들어봅시다.

원더풀 라이프 (2006년 동아와우회 발표 내용)

2017.02.12 21:26

soricli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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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동아와우네트워크팀장 최진주입니다. 저는 현재 부산혜성학교에서 컴퓨터 교사로 재직 중이며 2살 때부터 청력을 손실하여 오랜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을 안고 살아오다가 2006년 25살에 수술을 받아 인공와우로 인해 빛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인공와우로 인해 빛나는 삶을 살게 된 제 삶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저는 2살 때 홍역으로 인한 청각장애를 가진 후 초등학교 2학년까지 부산구화학교에 다니며 보청기를 착용한 채 계속 언어지도를 받았습니다.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하루종일 학교에 있는 시간 외에는 계속 어머니로부터 열심히 언어지도를 받은 결과 110dB에 미숙한 발음이지만 입모양을 보며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구화를 통해 학습이나 교우관계 면에서 별탈없이 잘 지내던 초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중 고등학교 시절은 성적지상주의에 의해 외로움과 어려움의 연속이였습니다. 당시에는 왕따라는 단어가 막 생기면서 문제점이 생기기 시작했으나, 아직 왕따에 대한 교육적 관심이 전혀 없던 때 였습니다. 더구나 성적에 대한 경쟁이 심한 때 였기에, 영어듣기평가와 음악 실기를 필기로 대체 해주는 법적으로 보장된 학교측의 배려에 대해서도 교우들의 반발이 심해지면서 왕따는 더 심해졌습니다. 결국 저는 고2에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와 수능을 보았고, 장애로 인한 학습의 어려움을 안고 있는 학생을 돕는 꿈을 실현하고자 특수교육과에 입학하였습니다.

대학교에서도 강의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자가학습을 통해 대학생활 내내 수면 시간도 줄이고 계속 도서관에서 살면서 노력하여 평점4.5만점으로 졸업을 하고 이어서 부산교원임용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이때까지는 장애인에 대한 특례가 없이도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노력만 하면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여러 고비를 넘으며 살아왔으나 교직생활 첫해에 학생과 의사소통이 안된다는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면서 정말 큰 좌절감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인공와우에 대해 알게 되면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큰 기대 없이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잘 들려지게 되면서, 보청기를 낄 적에는 모래를 삼키는 기분으로 묘사될 수 있는 탁한 소리가 들렸다면, 와우를 착용한 후에는 마치 생수를 마시는 기분으로 묘사될 수 있는 좀 더 맑고 선명하게 들린다는 기적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학생들 뿐 아니라 선생님들과의 대화도 원활히 이루어지게 되며 의욕이 넘치는 교직생활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노력을 인정받아 교육감상과 부총리 및 교육부장관상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많은 친구들도 생기게 됨으로써 수술 전에는 맛보지 못한 여러 가지 기적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늦게 태어나서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요즈음 아이들은 참 크나큰 복을 받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인공와우 수술을 받음으로써 더욱 분명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예전보다 훨씬 전문화된 재활치료 혜택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듣기 좋은 맑은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있게 되고, 다양한 청각적 정보로 인한 더 넓은 안목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삶 속에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도 훨씬 많아졌습니다.

저는 궁금합니다.

나중에 인공와우를 받은 우리 어린이들이 나중에 크면 어떤 모습으로, 또 어떤 직업을 가지고 지낼지 참 궁금합니다.

뒤늦은 나이에 수술을 받은 저 역시 기적을 체험하는 중이지만, 저 외에도 앞으로 인공와우와 함께하며 많은 사람들이 펼쳐질 기적을 기대해보면서 이렇게 응원해봅시다.

다 같이 마음속으로 외쳐보세요..

불가능은 없다!! 아자! 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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